'기황후'가 38회 째 방영되었다. 오늘 방송에선 황궁 내 최고의 권력으로 군림했타나실리(백진희)의 최후가 그려졌다. 기승냥(하지원)과 백안(김영호) 그리고 왕유(주진모)는 악조건 속에서도 힘을 합쳐 연철 일가를 몰아 내는 데 성공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연철이 죽임을 당하자 그의 딸인 타나실리도 결국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타나실리 역을 맡아 극의 전개에 활력을 심어 준 백진희는 이번 회를 끝으로 '기황후'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사실 '기황후'의 제작발표회 당시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타나실리 역에 백진희를 캐스팅한 것이었다. 실존 인물이었던 타나실리는 당시 앙숙이었던 기황후에게 채찍질은 물론 인두로 살을 지지기도 했던 악독한 인물이다. 이 잔인하고 악랄한 '악의 화신'을 백진희가 잘 소화해 낼 수 있을지 기대 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아직까지 백진희에게는 밝고 명랑한 '시트콤' 이미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백진희가'타나실리'라는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어 자칫 극의 흐름을 깨는 것은 아닌 지 무척이나 염려되었다.

 

기황후 백진희

 

하지만 '기황후'에서 타나실리 역으로 백진희를 캐스팅 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 백진희는 주변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연일 맹활약을 펼쳤다. '기황후'의 시청률 상승은 백진희의 출연 시점과 맞물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악동' 타나실리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필자는 그저 버릇없고 철이 덜 든 망나니 아가씨인 줄로만 알았다. 연철의 권력으로 인해 황궁으로 '무임승차'한 타나실리는 황태후라는 거물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기고만장했던 타나실리가 '악의 화신'으로 변하게 된 것은 황제 타환(지창욱)이 의도적으로 등을 돌린 이후부터였다. 배신감과 질투심은 타나실리의 두 눈을 멀게 만들었다. 박재인의 죽음 이후 후궁으로 새롭게 들어 온 기승냥과의 진검 승부는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시켰다. 연철이라는 절대 권력의 후광을 등에 엎은 타나실리는 무소불위를 권력을 휘두르며 기승냥을 압박했다. 하지만 연철이 죽자 타나실리는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냉궁으로 쫓겨 난 타나실리의 모습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타나실리

 

냉궁으로 쫓겨난 타나실리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동안 원수처럼 지냈던 황태후의 등장에 타나실리는 무릎까지 꿇어가며 손이 닳도록 빌었다. 과거 황태후를 깔아 뭉게며 의기양양해 했던 타나실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타나실리가 황태후에게 무릎을 꿇은 것은 목숨을 구걸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들 '마하'의 훗날을 부탁하려는 것이었다. 죽음을 직감한 타나실리는 자신의 안위 보단 자식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황태후는 고려인의 피가 섞인 '아이유시리다라' 보다 '마하'를 황태자로 책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지만 타나실리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어쩌면 연철 보다도 더욱 밉상으로 찍힌 타나실리를 황태후도 하루 빨리 제거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마하를 보필해 다음 황제가 되도록 만들겠소' 타나실리에겐 자신을 살려준다는 말 보다 황후의 이 말 한마디가 더욱 간절했다. 무릎을 꿇고 개처럼 비는 타나실리의 모습에서 자식을 생각하는 어미의 모성을 느낄 수 있었다. 타나실리도 자식 앞에선 한 없이 약한 부모의 한 사람이었다.

 

 

기황후 백진희

 

타나실리는 죄인처럼 끌려 가 사약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어디 타나실리가 쉽게 죽을 인물이었던가. 타나실리는 황제가 나타나지 않으면 사약을 받지 않겠다며 연신 사약을 집어 던졌다. 이미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타나실리는 끝까지 굽히지 않는 지독한 모습을 보였다. 타나실리의 거듭되는 발악에 타환은 친히 모습을 드러냈다. 타환이 사약을 마시지 않으면 강제로 입을 벌려 먹이겠다고 말하자 타나실리는 그의 멱살까지 잡으며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당신 때문이다'. 타나실리는 최후의 상황에서도 끝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타나실리 역을 맡은 백진희는 극한에 다다른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며 일취월장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기승냥은 황제에게 '타나실리는 사약으로는 아까우니 교형에 처하라'고 말했다. 황제는 이에 응해 타나실리를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목을 메라고 명했다.  

 

타나실리

 

타나실리는 황후의 신분을 박탈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처형을 당했다. 형장에 가기 전 왕유와 마주친 타나실리는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타나실리는 죽어서도 기씨 년과 왕유를 저주하겠다고 말했지만 끝내 왕유에게 마음을 놓치 못했다. 다소 뜬금없고 황당한 로맨스이긴 하지만 지아비를 빼앗기고 기댈 곳 없는 타나실리에게 '상남자' 왕유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 존재였다. 필자는 지독한 악행을 벌여 온 타나실리가 하루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최후를 맞이하자 왠지모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보통 악역이 최후를 맞이하면 통쾌하기 마련인데 타나실리의 죽음은 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동글동글한 외모에서 묻어나오는 귀여운 외모. 악역임에도 뭔가 부족한 허당의 모습. 왕유가 자신에게 반했다며 착각하는 도끼병에 걸린 모습. 역사상 최악의 악녀로 평가 받는 타나실리는 백진희를 통해 재해석되었다. 백진희는 새로운 형태의 악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며 악역 캐릭터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타나실리 백진희

 

타나실리 역을 맡은 백진희는 명품 배우들이 즐비한 드라마 속에서 시종일관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필자는 '기황후'가 하지원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예측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주연과 조연 배우들의 조화가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백진희는 극에 긴장감을 심어주며 조연 이상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백진희의 열연 덕분에 타나실리는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회자될 정도로 인기 있는 캐릭터가 되었다. 필자는 '기황후'라는 드라마의 최대의 수혜자는 다름 아닌 백진희라고 생각한다. 연기의 기대치를 반영했을 때 백진희는 오히려 하지원 보다도 돋보인 존재였다. 백진희는 타나실리를 통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며 배우로서 한 단계 진화에 성공했다. 시트콤, 사극, 현대극 등 장르를 불문하는 전천후 배우로 거듭난 백진희는 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었다. 타나실리는 쓸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배우 백진희의 앞 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백진희의 연기 인생에서 타나실리는 결코 잊지 못할 캐릭터가 될 것이다.

 

  1. Favicon of https://rja49.tistory.com BlogIcon 온누리49 2014.03.18 07:51 신고

    연기가 물이 올랐다고 하야 할까요
    표정 하나에서부터 악역 제대로 소화해 낸 듯 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좋은 날 되시고요^^

  2. Favicon of http://weba.im/6s7 BlogIcon 비너스 2014.03.20 10:41 신고

    기황후를 보고 있진 않지만 포스팅들 보면 백진희가 악역을 잘 소화해내고 있음을 느낍니다. 배우가 인물을 잘 구축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대견(?)하네요. ㅎㅎㅎㅎ 뭔가 엄마미소가 지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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